2009년 10월 03일
남이사 건강하건 말건
추억은 미화된다고 했던가. 그러나 추억이라 부를 게 남아 있을까. 사람을 극한으로 밀어붙여 서로의 밑바닥까지 드러내는 건 아름다운 광경이 아니었다. 다 타버려 재밖에 남지 않은 사랑. 편지에 한 번도 답장을 쓰지 않았던 너는, 질문이 아닌 문자에는 답을 하지 않던 너는, 만나지 않는 날엔 오분 이하의 통화가 전부였던 너는, 이제 와 아무렇지 않게 문자를 보낸다. 끝난 일이라고 해서 없었던 일이 되는 것처럼. 너와의 통화를 거부하는 내가 잘못인 양.
나만큼이나 그쪽도 다시 시작할 마음이나 미련따위 없다는 걸 안다. 날 만날 때 그 전 여자를 두고 그런 것처럼 지난 날의 상처로 신파극 찍을 소재가 필요한 것 뿐이다. 그 기억들과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은 아무 상관없다는 듯이. 빈말이라도 내가 힘이 된다고는 한 번도 말하지 않던 사람이었다. 힘든 건 힘든 거고, 여자친구는 여자친구였다.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사람이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금 깨달았다. 나는 그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었고, 그에게 내 행복은 안중에도 없었다.
집에 데려다 주던 버스 안에서 내 손등에 사랑해라고 적고 입맞추던 모습이 가끔 생각난다. 벌써 두 해도 더 지난 일이다. 함께 갔던 바다나 받았던 선물, 날 위해 했던 노력 같은 것에 비하면 작고 사소한 순간이지만 떠올리며 미소지을 수 있는 건 버스 안의 작은 사건 정도다.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이유를 백 가지도 더 댈 수 있지만, 사람을 오래 미워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냥 그 순간으로 기억하고 싶다. 그리고 가능하면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다.
# by | 2009/10/03 21:53 | 궁시렁 섬 | 트랙백 | 덧글(4)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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